하지만 세계 각국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등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진정되고 있는 중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경제위기가 진정되더라도 금융규제, 경제주도권, 소비행태 등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즉 금융활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경제주도권이 선진국, 이른바 G7 혹은 G8에서 다수의 신흥국이 포함된 G20으로 바뀌며 이전보다 합리적인 소비활동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의 소비패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신흥국의 부상과 합리적인 소비행태이다. 이들 요인은 특히 자동차의 소형화와 저가화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소비패턴 변화에 소형차 모델 강화 먼저 경제위기 이후에는 전세계적으로 합리적인 소비행태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이번 경제위기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소비과잉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미국 소비자들이 빚을 내어 주택을 구입하고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버블기에 자동차를 비롯한 내구재를 소비하다가 신용도가 낮은 소비자들까지 대출에 나서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할부금융과 대출로 소비를 이어가던 미국 소비자들이 더 이상 대출받기가 불가능하게 되고, 그에 따라 세계의 시장역할을 담당하던 미국이 소비를 줄이면서 경제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경제위기를 경험한 선진국 소비자들은 이제 경제위기 이전과 같은 과잉소비를 더 이상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단적인 예가 미국 가계의 저축률 증가이다. 그동안 1%에도 미치지 않았던 미국 가계 저축률이 2009년 5월에는 6.9%로 급증했다. Mr.엔으로 불리는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사카기바라는 “미국에서 소비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며 중산층 붕괴 등 소비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동차의 구매에 대해 말한다면 미국 가계당 3~4대씩 자동차를 구매하던 시대가 다시 오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미국 소비자의 변화에 대해 미국 자동차업계는 이미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주력차종으로 삼던 중대형 픽업과 SUV의 출시를 대폭 줄이고 소형차 모델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의 부상으로 소형화·저가화 촉진 자동차의 소형화와 저가화를 촉진하는 또 다른 요인은 신흥국의 부상이다. 경제위기 이전만 해도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의 신흥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담당해왔다. 글로벌 기업들은 임금이 저렴한 신흥국에 공장을 지어 물건을 만든 다음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에는 이러한 생산-무역구조가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동안 과잉소비로 부채가 쌓인 선진국이 더 이상 소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신 그동안 생산기지의 역할을 수행하던 신흥국들이 이번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제성장으로 GDP가 늘어나면서 연간소득이 5,000~3만5,000달러에 이르는 인구가 2008년에 8.8억명으로 증가했고, 2012년에는 12억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필품 이외의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이들 소비계층이 자동차를 비롯한 내구재를 구매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신흥국의 소비가 증가한다고 해서 바로 선진국 수준의 소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고 의료보험이나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며 교육비가 증가하고 있어 신흥국 소비자들이 실제로 지출할 수 있는 소득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신흥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은 선진국형의 고급 첨단제품이 아니다. 자동차를 예를 든다면 인도 타타자동차의 ‘나노’와 같은 저가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오토바이 구매자를 타깃으로 하는 나노는 선진국에서 판매되는 소형차와 비교하여 성능, 안전, 편의장치, 스타일 등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추첨을 통해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원화로 약 250만원). 신흥국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선진국 시장과 달리 가격경쟁력이 높은 제품이어야 팔리는 것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경제위기 이후 소형·저가화로 변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소비 트렌드와 그 원인을 살펴보았다. 이번 경제위기 동안 한국 자동차산업은 선제적인 신흥국 진출과 중저가제품 라인업의 구비,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 등을 통해 세계 자동차산업의 강자로 우뚝 올라섰다. 하지만 미국 빅3를 비롯한 경쟁기업들이 이제 정신을 차리고 신흥국 진출 및 저가 소형차 개발경쟁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업체들도 저가를 무기로 세계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최근의 승승장구에 도취되기보다 경제위기 때보다 더 큰 위기의식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에 나서야 한다. 진짜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복 득 규 연구전문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