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비교적 저가의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
8일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산 전기차용 배터리 수입액은 44억7천만달러(약 6조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4.6% 증가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수입액만 이미 작년 한 해 전체 수입액 34억9천만달러를 훌쩍 넘겼다.
우리나라가 올해 전 세계에서 수입한 전기차용 배터리는 46억3천만달러 규모였는데 이 중 중국산이 97%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대중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액은 6천600만달러로 작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올해 전기차 배터리 한 품목에서만 6조원 가까운 대중 무역적자를 본 것이다. 리튬, 전구체 등 이차전지 중간재에 이어 전기차용 배터리도 새로운 대중 무역적자 요인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중국산 LFP 배터리 채택 확대가 가파른 전기차용 배터리 수입 증가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통계상으로 수입에 잡힌 중국산 전기차용 배터리 중 대부분이 사실상 한국 업체 간 '내부 거래'에 해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중국에 진출한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우리 배터리 업체가 현지 공장에서 만든 삼원계 배터리를 현대차 등 국내 고객사에 공급할 때도 수입품으로 통계에 잡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현대차그룹, KG모빌리티 등 완성차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낮추려고 중국 업체가 만든 배터리 채택을 본격화함에 따라 중국산 이차전지 수입액 증가에 더욱 속도가 붙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가 코나 일렉트릭에, 기아차가 니로 EV·레이에 CATL 등 중국 업체들의 배터리를 장착해 판매하는 등 올해 들어 국내 시장에서 보급형 차량을 중심으로 중국산 배터리 채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KG모빌리티도 주력 모델 토레스의 전기차 버전인 토레스 EVX에 중국 업체 비야디의 LFP 배터리를 넣어 보조금 수령 시 소비자가 3천만원대에 차량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캐스퍼도 내년 LFP 배터리를 단 전기차 모델이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LFP는 안전성이 높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 무거워 그간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보급형 모델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여기에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LFP 배터리 성능을 크게 개선하면서 비중국 시장에서도 LFP 채택이 빠르게 늘어가는 추세다.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인 CATL은 지난 8월 15분이면 완충해 최대 700㎞를 주행할 수 있는 새 LFP 배터리 '선싱'을 발표하면서 LFP의 기술적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NCM(니켈·코발트·망간) 기반의 삼원계 기술이 주력인 국내 배터리사들도 이런 시장 변화에 주목하고 LFP 개발에 뛰어든 상태지만 양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이 본격적 LFP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2026년 전까지의 '공백기'에 중국산 LFP 배터리 수입 확대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수입차에 실린 배터리까지 더하면 중국산 LFP 배터리 사용은 사실 더 많다.
시장조사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테슬라의 모델Y는 9월 국내에서 4천206대가 판매됐다. 이는 8월(431대)에 비해 10배가량으로 폭증한 수치다.
테슬라가 미국에서 생산된 LG에너지솔루션의 삼원계 배터리 채택 모델Y 대신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LFP 배터리 장착 모델Y를 팔면서 가격을 2천만원가량 낮추자 판매량이 급증했다.
지난 8월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수입된 전기차는 2억5천만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155.6% 증가했다. 여기에는 테슬라가 중국에서 들여와 국내에 파는 전기차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김경훈 무역협회 공급망 분석팀장은 "올해 1분기 조사 때는 중국에서 수입된 전기차용 배터리 중 약 85%가 우리 업체 간 거래일 것으로 파악했는데 지금은 국내 기업 간 거래가 줄고 (중국 기업이 수출하는) LFP 배터리가 늘었을 것으로 본다"며 "엔트리 라인업에서 LFP 채택이 확대되는 상황이어서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