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5월 이탈리아 북부 코모호수 인근 호텔 빌라 데스테에서는 9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클래식카 모터쇼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가 열린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가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매년 전 세계 부호들이 참여해 자신들이 보유한 유서 깊은 클래식카를 대중에 공개한다. 동시에 완성차업체들도 회사의 역사와 미래 비전이 담긴 콘셉트카 전시에 나선다.
올해에는 차량 특성별로 클래스가 A에서 H까지 나뉘어져 70여개 차량이 전시됐다. 또 콘셉트카와 이륜차 전시 공간도 따로 마련됐다.
길을 건너니 현대차의 'N 비전 74'가 전시된 콘셉트카 전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공간에는 부가티의 마지막 16기통 엔진 모델인 W16 미스트랄과 중국 홍치의 스포츠카 모델 S9 콘셉트, 일본 디자이너 켄 오쿠야마가 디자인한 KODE61 버드케이지, 현대차의 N 비전 74,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파가니 후에이라가 천막 안에서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나란히 전시된 S9 콘셉트와 KODE61 버드케이지, 현대차의 N 비전 74는 '콘셉트카 한중일전'을 방불케 했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N 비전 74였다. 현대차는 앞서 열린 자사 헤리티지 브랜드 플랫폼 '현대 리유니온' 출범 행사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모델과 N 비전 74를 최초 공개했다.
물론 외형 면에서는 다른 콘셉트카보다 다소 평범해 보였지만, 차량에 배터리 모터와 수소연료전지 등 전동화 비전을 넘은 첨단기술이 탑재됐다는 설명이 나오자 관람객들은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들며 관심을 표했다.
특히 N 비전 74가 영감을 받은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을 복원한 조르제토 주지아로 디자이너가 한동안 전시 공간에 머물며 관람객에게 직접 차량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인 마띠아 씨는 N 비전 74를 본 후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잘 몰랐는데 이렇게 역사가 길 줄 몰랐다"며 "콘셉트카지만 차의 미래를 보여주는 차량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의 또 다른 '스타'는 영국 고급 브랜드 롤스로이스의 전기차 스펙터였다.
롤스로이스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찰스 롤스는 1900년 전기차가 매연이나 진동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롤스로이스가 전면 전기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이러한 예상은 스펙터의 등장으로 120여년이 지나 실현됐다.
일단 외관은 판테온 그릴이나 매끄러운 루프라인 등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현지 직원으로부터 '250만㎞에 달하는 주행시험을 거친 결과 내연기관차와 동일하거나 뛰어난 동력성능을 갖춘 것이 증명됐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지난 3월 한국을 찾는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롤스로이스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전기차로 전환한다고 밝히면서 스펙터를 아시아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밖에도 1920∼1930년대 출시된 클래식카들이 전시된 클래스 A와 클래스 B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 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
특히 차를 출품한 차주들은 차의 역사를 설명하며 관람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혹시나 차가 비에 맞을까 봐 시트에 우산을 펴놓고 수건을 들고 차를 닦는 차주도 있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680 모델을 출품한 차주는 관람객들에게 "6기통 엔진을 갖추고 1928년 출시된 희귀한 차"라며 "(전설적 레이서) 루돌프 카라치올라가 이와 비슷한 차를 타고 뉘르부르크링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1950∼1960년대 출시된 포르쉐와 페라리 경주차들이 줄지어 전시된 클래스 D도 큰 인기였다. 특히 1995년과 1996년 BMW V12 엔진을 탑재하고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연이어 우승한 맥라렌 F1 GTR이 전시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경연에 참여하는 차들이 관람객 사이로 호수 옆길을 지나는 퍼레이드도 벌어졌다. N 비전 74는 21일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센터장이 직접 운전해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정 회장은 콘셉트카 전시장에서 후에이라 직원에게 "훌륭한(Excellent) 차"라고 말하며 내부 시트 등을 상세히 물어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소감을 묻는 말에 "멋진 차들이 참 많다"라고 답했고, N 비전 74가 제일 멋있다는 한 관람객의 말에는 "고맙다"라고 인사한 뒤 전시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