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나타는 시장에 나온지 25년이나되는 단일모델 최장수 브랜드이자 대한민국 베스트셀링카이다. 국산 승용차의 대명사격인 포니를 비롯 스텔라, 엑셀에 이은 현대자동차의 4번째 고유모델이기도하다. 1985년 10월 첫 선을 보인 이래 2009년 6세대 쏘나타까지 4반세기동안 국내 중형차시장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차종이다. 현대차 불멸이 신화 쏘나타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왔나? 현대차 전사원을 대상으로 차명을 공모한 결과, 120여개가 제시되었는데 쾌스트라(Questra), 쏘나타(Sonata) 등 6가지가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해외시장의 선호도를 함께 조사했다. 미국 현지법인(HMA) 및 당시 240여개의 딜러들에게 의견을 모은 결과,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쏘나타를 지목했다. 한편 차명과 얽힌 에피소드로는 애초 "소나타"로 출발했으나 당시 품질이나 경쟁사들의 비난이 함께 가세하면서 "소나 타는 차"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부랴부랴 "쏘나타"로 바뀌는 해프닝을 빚기도했다. |
소나타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85년 10월. 당시 중형차량으로 "스텔라"가 내수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가운데 또하나의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스텔라 데뷔 직후인 84년 해외시장에서의 수출전략형 차종으로 중형차 "Y2카" 개발에 착수한다. 이는 포니, 스텔라, 엑셀에 이은 네번째 고유모델 개발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반짝 수요를 타는 듯했으나 예상외로 소비자들의 반응은 그리 탐탁치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차 모습은 기존 "스텔라"에 앞뒤 범퍼, 라디에이터그릴, 사이드몰딩 등 외관을 개선하고 편의사양을 더하는 등 스텔라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품질도 그렇지만 당시 중형차시장을 잡고있던 대우차의 "로얄시리즈"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이면도 없지 않다. "소나 타는 자동차"라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 4년 반만인 1988년 6월 스텔라 윗급의 새 중형차인 쏘나타가 탄생한다. 쏘나타는 직선적인 디자인을 버리고 모서리를 둥글려 온화한 느낌을 살렸다. 또한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으로 앞바퀴굴림을 써서 넓은 실내를 확보하고 와이퍼를 본네트 안쪽에 넣어 바람소리를 줄였다. 또한 엔진룸과 트렁크를 짧게 만든 대신 실내를 최대한 넓힌 덕분에 최고급 모델 그랜저보다 실내공간이 더 컸다. 이는 여러 사람이 타는 패밀리카의 장점인 동시에 ‘이왕이면 큰 것’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도 잘 맞았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8ℓ와 2.0ℓ 두가지가 얹혔으며 미쓰비시에서 도입한 엔진은 소음이 적고 부드러워 쏘나타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쏘나타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차’라는 인식은 이때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스위치를 누르면 엑셀을 밟지 않아도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크루즈 컨트롤도 옵션으로 갖추었다. 쏘나타는 나온 지 한 달여만에 1만여대의 계약고를 올려 히트를 예고했으며 이듬해부터 국내 히트상품에 단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연히 소비자들의 인기가 가세하면서 이후 5년간 60여만대가 판매됐다. 이후 1991년 헤드램프 등 일부 디자인을 고급화한 "뉴 쏘나타"가 나오면서 쏘나타신화를 만들어 나갔다. |
중형차의 대중화를 선도한 쏘나타는 93년 5월 쏘나타2가 바톤을 이어 받았다. 쏘나타의 디자인과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쏘나타2의 출시는 국내 중형차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둔 전략이다. 쏘나타2는 지난 1988년부터 "Y-3 Car" 프로젝트명으로 차세대 중형차 개발에 착수했다. 컴퓨터 스타일링을 시작으로 그동안 1,500억원을 투자해 5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스타일, 성능 및 제반 사양이 기존 쏘나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중형차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쏘나타의 풀모델 체인지된 쏘나타2는 흠 잡을때 없는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부드러운 곡선에 둥글납작한 헤드램프에 라디에이터그릴은 자동차디자인의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졌다. 여기에 낮은 차체의 안정감, 에어백 등 안전 편의장치를 보강함으로써 품질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쏘나타2의 외관특징으로 전체외관은 최신 설계의 올라운드 클린바디로 충돌시 뛰어난 충격흡수력과 공기역학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대형차 수준의 주행안정성을 확보했다. |
1996년 2월에는 쏘나타2의 인기를 계승하는 "명작" 쏘나타3를 선 보인다. 실제로 쏘나타2와 쏘나타3는 아직도 도로위에서 심심찮게 볼수 있을만큼 중형차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쏘나타 출시당시 헤드램프의 디자인이 남근(男根)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하여 논란이 일기도했다. 하지만 쏘나타3의 인기는 폭증하면서 내수 100만대를 돌파하는 대 기록을 세웠다. 쏘나타가 "국민 중형차"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뿐만아니라 다이나믹한 스타일과 초정숙성을 실현한 수출전략형 중형세단 쏘나타3를 개발한 현대차는 연 30만대 생산, 연10만대(95년4만대) 수준으로 해외시장 수출체제를 갖췄다. 현대차는 특히 쏘나타 3를 "티뷰론", "HCD III" 등과 함께 高價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외관의 전면부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를 하나로 돌출처리하여 공격적인 형태로서 강한 이미지를 나타냈다. 헤드램프는 원형과 타원형의 복합적 형태로 조사각과 조사폭을 확대한 최신의 SFRF(Smooth Form Reflector) TYPE 4등식 램프를 채택하는 혁신을 보였다, |
1998년 3월 4세대 쏘나타인 "EF쏘나타"가 선보이면서 중형차시장은 다시 출렁였다. 신차개발에 총 4,500억원을 투자했다. 1995년 개발에 착수, 2년 6개월(30개월)간의 연구개발 끝에 스타일, 성능, 안전도 편의성등을 한차원 높인 "EF쏘나타"가 탄생한 것이다. EF(Elegant Feeling) 쏘나타는 복고풍의 고전적 스타일에 넓고 낮아진 차체와 함께 초경량, 동급최강의 175마력 델타엔진(6기통 2,500cc)을 장착했다. 쏘나타3까지 미쓰비시엔진 등 일본기술을 사용했다면 EF쏘나타는 독자개발한 델타엔진을 장착했다. 현대차 기술의 자신감은 고조됐다. 또한 신세대 인공지능 HIVEC 자동변속기, 더블위시본 현가장치를 장착, 꿈의 기술을 완벽히 구현하고 동력성능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EF쏘나타는 차량의 모든 충돌 가능성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최적 설계로, 전방위 차체안전구조를 실현하여, 자체 테스트 결과 미국 및 유럽의 모든 충돌테스트 규제치를 별4개(★★★★)의 좋은 성적으로 만족시켰다. 1. 2세대 쏘나타의 경우 총 수출대수가 약 30만대 수준이었으나 EF쏘나타부터 본격적인 수출이 이뤄지면서 약 60여만대가 수출됐다. 그래도 이때까지 쏘나타는 국내용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
2005년 출시된 NF쏘나타는 국내용보다 해외시장을 겨냥해 개발됐다. 현대차는 기존 EF쏘나타가 인정받은 품질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제품력의 중형차 출시를 위해 NF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에 착수됐고, 26개월의 개발기간과 2,900억원의 개발비용을 쏟아 부었다. 쏘나타의 핵심기술인 쎄타엔진 개발에만 46개월이 걸렸다. 쏘나타의 프로젝트명 NF는 영원불멸의 명성(신념)(Neverending Fame(Faith))이라는 의미로 쏘나타의 브랜드 파워와, 장수브랜드 육성을 위한 현대차의 의지가 담겨있다. 쏘나타는 주력시장인 북미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쏘나타 시리즈는 물론 경쟁 중형차급 주력모델 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프리미엄 중형세단으로 개발됐다. 쏘나타로서는 최초로 월드 클래스 프리미엄을 표방했던 중형 세단이다. 실제로 해외시장에서 쏘나타, 현대차를 보는 시각은 많이 달라졌다. 단순히 가격이 싼 차에서 "타 볼만한 자동차"로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NF 부터는 당당히 미국에서 "MADE IN USA 쏘나타"로 직접 생산, 판매되면서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을 한껏 높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