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낸 한반도의 가을은 풍요롭다. 가을이면 서해안은 각종 먹거리 축제로 흥겹다.
바닷가 마을은 금어기가 끝나는 8월 중순 이후부터 바빠진다. 이 무렵, 여름내 휴가객들로 몸살을 앓은 동해안은 서해안에 자리를 내어준다. 가을이 다가오면 전어를 선두로 꽃게, 대하 등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어 날이 차가워지면 물오른 굴과 새조개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가을이면 서해안 줄기를 따라 맛있는 축제가 펼쳐지는 이유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
가을 전어축제를 시작으로 동해안에서 서해안으로의 이동이 시작된다. 가을이면 서해안은 먹거리 축제로 들썩인다.
전어와 대하, 꽃게가 서해안을 대표하는 가을 별미 삼총사다
서해안으로 가보자. 서해대교를 지나 당진으로 향하는 길. 양옆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제법 세차다. 천수만을 사이에 두고 태안반도와 서산 그리고 홍성과 보령이 그를 감싸 안고 있다. 보령에서 서천으로 이어진 서해안 줄기는 금강을 경계로 전북 군산으로 뻗어간다.
사계절 어느때고 맛의 고장으로 꼽히는 남도는 잠시 접어두자. 전어 축제로 이름을 날리는 충남 서천 홍원항이 이번 맛기행의 주인공이다.
전어를 맛보는 세 가지 방법.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전어회, 매콤새콤 야채와 함께 맛보는 전어무침, 막을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일품인 전어구이. 이 세가지를 맛보면 전어의 매력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말’이라고 했던가. 아니,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했던가. 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런 과대 과장 문구가 통용되는 것일까. 게다가 이 전어(錢魚)라는 이름에는 돈도 들어가 있다. 혹자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는 물고기,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맛’이 있는 생선이라는 뜻이다. 전어에 대해 알아보자.
산란기를 끝낸 전어는 9~11월까지 몸에 살이 오른다. 사철나는 생선이지만 가을 전어가 유명한 이유다. 대부분은 9월말에서 10월 초와 중순까지 열리는 전어축제가 끝나면 전어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11월 초와 중순까지는 기름진 전어를 맛볼 수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뼈가 억세진다. 물 오른 전어는 전체적으로 기름지며 비린내가 적어진다.
▶괄시받던 전어가 유명해진 이유는?
[왼쪽]멸치도 잡고 갈치도 잡고, 새우도 잡는 앙강망을 손질 중인 선원들. 앙강망은 전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업에 사용된다
[오른쪽]자연산 대하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매일매일 잡아들이는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미리 예약해야만 맛볼 수 있는 이유다. 흔히 보는 대하는 양식이다. 요즘은 kg에 3만원 정도면 맛볼 수 있다
다른 생선에 비해 기름기가 많은 전어는 회로 맛보아도 고소하지만 구워낼 때 절정에 달한다. 기름기 가득 스민 고소한 냄새가 1km까지 퍼진다고 하니 집을 나가 부지런히 걷던 며느리가 발길을 돌릴 만도 하지 않았을까.
가을이면 전어 굽는 냄새가 진동했을 서해안 마을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아쉽게도 며느리들이 구박받던 그 시절에는 전어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서해안의 가을별미 3총사...전어, 대하, 꽃게
서해안 가을 별미 삼총사인 전어, 대하, 꽃게가 모두 모였다. 바지락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찬바람이 불면 굴이며 새조개도 알이 차오를 것이다
“대하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두면 항상 전어가 껴 있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자연산 대하는 귀한 몸 아니오. 대하보다 더 많이 잡힌 생선(전어)은 골칫거리밖에 더 되었겠소. 빼기도 귀찮아서 그냥 그물째 말렸다 으스러뜨리곤 했어요. 옛날에는 잘 먹지도 않았어요. 하도 많이 나니까 먹게 된 거죠. 남아도는 걸 주민들 몇몇이 홍원항 근처에서 팔았는데, 그게 이렇게 커졌어요. 여기가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된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서천에서 나고 자라 홍원항 근처에서 횟집을 운영 중인 상인의 설명이다. 괄시받던 전어, 가을 별미로 승승장구하더니 올해는 어획량까지 줄어 귀하신 몸 되었다. 전어(錢魚)가 아니라 금어(金魚)다. 작년 전어 축제 가격과 동결해서 홍보까지 마쳤는데 무려 2배 이상 가격이 올라 난감했다고.
▶한번 맛보면 그 고소한 맛 못 잊어
전어회는 취향대로 초장이나 된장, 막장 등에 찍어서 야채쌈과 싸서 맛본다. 입안 가득 고소한 맛이 진하게 퍼진다
자, 이제 전어를 맛볼 시간이다. 전어는 흔히 회나 무침, 또는 구이로 맛본다. 탄력있는 식감에 충분히 씹어 삼킬 수 있는 부드러운 뼈까지, 전어를 알알이 맛볼 수 있는 전어회가 ‘꿀꺽’ 넘어간다. 담백하면서도 쫄깃하고 고소하면서도 부드럽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말’이라더니 거짓이 아니었다.
봄에 태어나는 전어는 여름을 거치며 살을 찌운다. 월동준비에 들어가는 가을부터 살을 찌우는데, 이때가 가장 맛이 좋다. 살이 오르는 그 ‘시즌’이 바로 요즘이다. 봄보다 무려 2배 가 늘어난 지방 함량 덕분에 뼈까지 부드러워진다.
다 자란 전어는 어른손으로 한 뼘 정도 된다. 중간 크기(20cm)에 불그스름한 색상의 전어를 최고로 친다. 탄력있는 육질도 빼놓을 수 없다. 여름 전어는 기름기가 적고 겨울 것은 뼈가 억세며 가을 전어만 못하다.
[왼쪽]초장에 고춧가루와 각종 야채를 넣어 매콤새콤하게 무쳐낸 전어 무침도 별미다. 약간 느끼할 수도 있는 전어를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메뉴
[오른쪽]며느리도 불러온다는 그 소문의 주인공. 전어구이다. 노릇하게 구워낸 전어는 고소함이 극대화된다. 회를 못먹는 이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가을 전어는 맛도 맛이지만 풍부한 영양도 갖추고 있다. 맛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미꾸라지 못지않은 보양식인 것.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DHA를 비롯해 사람 몸에서 생성되지 않는 타우린도 풍부하다. 타우린은 필수아미노산과 콜레스테롤과 체지방을 분해한다.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흔히들 참기름과 된장, 고추, 마늘 등을 넣은 막장에 찍어 맛보는 전어를 최고로 친다. 야채쌈을 더하는 것이 귀찮다면 고춧가루에 각종 야채를 넣고 매콤새콤하게 무쳐낸 전어무침을 맛보면 된다. 양념속에서도 전어의 고소함은 빛을 발한다.
퍼져나가는 냄새가 어찌나 고소한 지 집나간 며느리 발길을 돌린다는 전어 구이까지 맛보자. 그 냄새가 어느 정도이기에 며느리는 발길을 돌렸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가 돌린 것이 어디 발걸음 뿐이었을까. 마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게 할 만큼 ‘맛있는’ 생선이라니. 가을 전어, 사람을 구한다.
<한국관광공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