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차 차기 대표이사인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이 시장 불확실성을 돌파할 카드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내세웠다.
무뇨스 사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컨벤션센터에서 한 인터뷰에서 "수십 년간 자동차 업계에서 종사했지만, 이 정도의 변동은 없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무뇨스 사장이 현대차 대표이사로 내정된 이후 국내 취재진에 시간을 미리 할애해 공식 인터뷰에 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의 특징 중 하나가 '빨리빨리' 문화인데 굉장한 강점"이라면서 "나는 이를 '빨리빨리, 미리미리' 문화로 발전시켰고 앞으로도 이러한 정신을 계속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화석연료 중심 정책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보다 유연한 전동화 전략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무뇨스 사장은 "전기차(EV)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면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가 바뀌면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 유연성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고객이 원하는 바에 따라 HEV 투자와 내연기관차 생산을 늘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교두보로 꼽히는 HEV, PHEV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차까지 생산을 늘릴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 상황과 규제 흐름을 잘 아는 무뇨스인 만큼 전동화 속도 조절의 폭을 크게 잡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를 공약해왔고 최근에는 정권인수팀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무뇨스 사장은 IRA 약화·폐지, 보편관세 도입,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를 꼽아달라고 하자 "현실이 될 수 있으니 답하지 않겠다"라고 농담한 뒤 "다양한 시나리오에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무뇨스 사장은 "산업적으로 이례적인 혼란이 있지만 또 새로운 기회"라면서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자동차 관련 인센티브가 바뀔 수도 있고, 중국 기업은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면서 "현대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바로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동화의 브릿지 역할을 하는 모델은 HEV나 PHEV가 될 수도 있고 수소전기차(FCEV)가 될 수도 있다"며 "이 모든 것은 자동차가 소프트웨어중심차(SDV)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챌린지(도전)이자 기회"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파워트레인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전기차에서 이탈하는 수요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다행히 현대차가 '빨리빨리' 정신으로 잘 대처해왔다며 "앨라배마 공장은 경쟁사와 다르게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6개 모델을 생산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 앞으로 인센티브 등 챌린지가 계속되겠지만 현대차는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은 IRA 폐지에 대해서도 "현대차만이 아니라 모든 업계를 대상으로 없어지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본다. 오히려 현대차가 더 잘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대해선 "지난달에 생산은 시작했지만 단지 내 모든 공사가 끝나진 않았다"며 "내년 1분기 완공을 목표로 준공식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은 웨이모(Waymo), 제너럴모터스(GM)와의 협력 사업과 전기차 구독서비스 '이볼브 플러스' 등과 관련해선 "혁신과 경쟁을 위한 아이디어를 계속 고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웨이모와 최첨단 로보택시 출시를 준비 중이고 곧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GM과는 양사의 자동차 생산 능력(캐파)을 더 잘 활용하고 전동화 기술을 공유할 것이다. 곧 추가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무뇨스 사장은 지난 15일 사장단 인사에서 현대차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다음 달 예정된 이사회에서 결의만 얻으면 내년 1월부터 현대차 CEO가 된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 첫 외국인 CEO라는 타이틀에 대해 "놀랍고 혁신적인 방향이다. 선제적으로 사고하고 혁신적으로 움직이는 정의선 회장 덕분"이라며 "영광스럽고 큰 책임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1965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무뇨스 사장은 1989년 푸조·시트로엥 스페인 딜러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들였고 대우자동차 이베리아법인 딜러 네트워크팀장, 도요타 유럽법인 판매·마케팅 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2004년 닛산에 합류해 멕시코 법인장, 북미 법인장 등을 거쳐 최고성과책임자(CPO) 겸 중국법인장에 올랐다.
현대차는 2019년 무뇨스 사장을 전격 영입해 COO 겸 미국판매법인장 및 북미권역본부장을 맡겼다. 현대차그룹 최초로 사장급으로 영입된 외국인 인사다.